도시는 다양한 기능과 구조를 담고 있는 복합체입니다. 그 속에서 도시설계는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기반이 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도시계획과 공간설계는 주로 다인 가구 중심의 주거 패턴과 밀도, 통행, 인프라 배치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습니다. 공간 단위 설정에서 ‘가구’는 물리적 최소 단위로 사용되어 왔지만,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와 주거·생활 패턴의 변화는 이 기존 단위가 실질적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울연구원과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의 보고서들은 최근 도시 문제의 다수가 ‘공간 단위 기준의 낡은 틀’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공간 설계가 여전히 4인 가족 기준의 면적, 생활 동선, 시설 분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1인 가구의 실제 수요는 고려되지 못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도시 인프라의 비효율과 주민 삶의 단절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인 가구 시대의 도시설계는 물리적 공간의 단위를 다시 설정하는 작업, 즉 ‘공간적 최소 단위’의 재정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기존의 공간 단위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고, 왜 지금 변화가 필요한지, 그리고 국내외에서 제안되고 있는 1인 가구 맞춤형 공간 단위 재설계 방안과 도시적 시사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기존 공간 단위 개념의 한계와 시대적 불일치
공간적 최소 단위는 도시설계에서 인구 밀도 산정, 기반 시설 공급, 주택 배치, 공공서비스 범위를 결정하는 기준입니다. 전통적으로는 ‘가구(household)’ 단위가 주로 사용되며, 1가구를 평균 2~4인 구성으로 보고 1세대가 필요로 하는 면적, 이동 거리, 생활 밀도 등을 설계 지표로 삼아 왔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단독주택 위주의 저밀도 도시, 또는 산업화기 대규모 공동주택 공급 시대에는 효율적인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도시 구조는 급변했습니다. 대도시에서는 1인 가구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가족 중심 공간 배치, 차량 중심 교통 설계, 생활 서비스의 분산 배치 등은 실질적인 삶과 어긋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AURI는 최근 발표한 연구에서, “기존 공간 단위 기준은 여전히 ‘가족 단위의 반복’이라는 상상에 기반하고 있으며, 실제로는 ‘다양한 1인 단위의 병렬적 존재’로 구성된 도시 현실과 괴리를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AURI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지적합니다:
- 공공서비스 반경 설정 오류: 어린이집, 복지관, 보건소 등이 가족 중심 반경(500~1,000m)으로 설정되어 있음
- 주택 면적 기준 과잉: 1인 가구의 평균 거주 면적 수요는 약 20㎡~30㎡이나, 기존 공동주택 기준은 60㎡ 이상
- 생활 동선 부적합: 대중교통 환승, 쓰레기 배출, 공동공간 이용 등에서 동선 낭비 발생
- 기반 시설 과부하 또는 과잉 공급: 수도, 전기, 하수 등 설비가 가구당 수요를 과대 추정하여 과잉 설계됨
이처럼 ‘기준’의 문제는 단지 수치상의 오류가 아니라, 삶의 공간이 비효율적이고 불친절해지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1인 가구 특화 공간 단위 재설계를 위한 접근 방식
1인 가구 중심 도시설계를 위한 핵심은 기존의 ‘가구 단위’에서 벗어나, ‘사용자 단위’ 또는 ‘행태 기반 단위’로의 전환입니다. 여기서 ‘공간적 최소 단위’란 단순한 면적이 아니라, 한 개인이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공간 범위와 그 안에 담겨야 할 요소를 의미합니다.
국토연구원은 이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범주로 재분류하고 있습니다:
- 기능 중심 단위(Function-centric unit)
- 주거, 위생, 조리, 수납, 휴식, 이동 등 일상적 기능 수행이 가능한 최소 면적 단위
- 예: 마이크로하우스(10㎡~15㎡) / 이동형 주택(모듈형)
- 이동·접근 중심 단위(Mobility-centric unit)
- 대중교통, 공유시설, 공공서비스까지의 보행 기반 접근 반경(도보 3~5분 이내)
- 1인 가구가 차를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차량 중심 반경은 무의미
- 심리적 밀착 단위(Psychological proximity unit)
- ‘혼자 있으나 혼자가 아닌’ 공간 배치 구조: 소규모 공유 마당, 커뮤니티 부엌, 미니 서재 등
- 프라이버시 유지 + 사회적 연결이 동시에 가능해야 함
이러한 접근은 도시설계를 더 작고, 세분화되고, 유연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며, 1인 가구가 도시의 밀도 안에서 자기 정체성과 생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국내외 도시의 사례를 통해 본 실험적 기준 재정의
일부 도시들은 이미 공간 단위를 재정의하려는 실험을 시작하고 있으며, 청년층, 고령자, 창작자 등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집단을 대상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 서울시 도심 마이크로하우스 프로젝트
서울시 SH공사는 1인 가구 특화를 위해 18㎡ 내외의 도심형 소형 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 공용주방, 라운지, 샤워시설을 분리 배치한 구조를 실험 중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사적 공간은 최소화, 공용 공간은 질적으로 강화’라는 원칙을 기반으로 하며, 1인 가구의 공간적 요구를 반영한 집합적 소단위 도시설계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도쿄 미니멀 타운 모델
도쿄도는 고령 단독가구가 급증하면서, 30㎡ 이하 주택과 50가구 미만 블록을 중심으로 공공서비스 및 인프라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쓰레기 수거는 2가구 단위로 집하장 연결, 우편 및 택배는 공유 보관함, 의료 서비스는 300m 반경 내 모바일 클리닉이 순환하는 방식입니다.
- 런던 ‘코리빙(CO-LIVING) 기준’ 제정
영국 주택 커뮤니티 지방정부부(DLUHC)는 1인 가구 전용 건축기준을 별도로 마련하여, ‘1인 전용 생활 공간’ + ‘30명 이내 공유 커뮤니티 공간’이라는 2중 단위로 주거 밀도를 설계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설정했습니다. 이는 주거 만족도, 사회적 안정성, 인프라 효율을 동시에 고려한 설계 접근으로, 런던 시내 신규 개발에서 적극 반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공간을 단순히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능과 관계, 사용성, 감정까지 함께 포함하는 ‘새로운 설계 기준’으로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간 단위 기준 재정의의 정책적 시사점
공간 단위의 재정의는 건축가나 도시디자이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국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정책과 기준을 어떻게 전환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구조가 달라지는 핵심 사안입니다. 다음과 같은 정책적 접근이 요구됩니다.
- 법제도 기준의 유연화
- 주택법상 최소면적, 인구밀도 산정 방식, 시설 반경 기준 등은 가구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전환 필요
- 공공임대주택 공급 기준에서 1인 가구 맞춤형 공간 단위 설계 기준 신설
- 생활권 단위의 재구성
- 기존 행정동 또는 생활권 단위 재편 시, 1인 가구 밀집도와 이동 행태를 반영한 ‘생활 밀착형 셀(cell)’ 설정
- 마이크로 커뮤니티, 유연한 생활 서비스 배치 확대
- 공공시설 설계 지침 개정
- 복지관, 커뮤니티센터, 공공화장실 등은 ‘소규모 분산형 + 기능 혼합형’으로 개정
- 예: 500세대 단지에 1개 복지관 → 1인 가구 50세대 단위의 커뮤니티 부스 3개 설치
- 도시 인프라 설계 매뉴얼의 세분화
- 배관, 전기, 통신, 환기, 쓰레기 배출 동선 등을 1인 단위 생활 방식에 맞게 리디자인
- 혼자 사는 고령자와 청년층의 이동성과 관리 편의성을 고려한 기반 시설 기준 필요
도시의 질서는 ‘작은 단위’에서 시작됩니다.
도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구조입니다. 1인 가구가 도시의 주류로 자리 잡은 현재, 도시설계 또한 그들의 생활 방식과 공간 사용 방식에 맞춰 세밀하게 재편되어야 합니다. 이제 도시계획은 더 이상 과거의 평균 가구 수나 면적 기준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공간적 최소 단위를 다시 정의한다는 것은 곧,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에서부터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그 단위가 현실과 어긋나 있을수록, 도시 전반의 효율성과 주민 삶의 질은 함께 저하됩니다. 반대로, 그 단위가 실제 사람들의 사용 행태에 맞춰 조정될 때, 도시는 훨씬 더 유연하고 인간 중심적인 환경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도시계획은 크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단위를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 시작은 바로 1인 가구의 일상에서 출발해야 하며, 이는 도시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회복력을 높이는 근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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