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은 오랜 시간 동안 ‘정상 가족 구조’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수립되어 왔습니다. 표준가구로 불리는 3~4인 중심의 핵가족이 도시 인프라, 주택공급, 교통체계, 공공서비스 설계의 기본 단위로 기능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도시는 더 이상 이 전제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국내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1인 가구의 비율은 이미 가장 높은 가구 유형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 현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서울연구원과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다수의 보고서에서는, 1인 가구가 특정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청년, 중장년, 고령층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에 걸쳐 보편화되고 있으며, 주거뿐 아니라 복지, 보건, 커뮤니티 등 도시 모든 영역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행 도시계획 및 공간 관련 법·제도는 여전히 다인 가구 기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1인 가구를 위한 독립적 고려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입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1인 가구 중심 도시계획 수립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고자 합니다.
기존 법/제도는 다인 가구 중심 전제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현행 도시계획 관련 법령과 제도는 대부분 다인 가구 중심의 생활 패턴과 공간 수요를 전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도시기능의 효율적 배분과 주거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지만, 공간 단위나 용도지역 설정, 주거 밀도 기준 등이 다인 가구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어, 1인 가구의 실제 주거 및 생활 수요와는 괴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시기본계획 수립 시 적용되는 ‘가구당 인구수’ 기준, ‘생활권 단위별 시설 배치 비율’, ‘공공임대 유형별 공급 구조’ 등은 모두 가족 단위 수요를 기준으로 맞춰져 있습니다. 이에 따라 1인 가구가 다수 거주하는 지역에서도 소형주택 부족, 공공서비스 미스매칭, 인프라 과소 공급 등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관련 분석에 따르면, 현재 주택정책은 1인 가구에 대해 단기적 주거복지 차원에서는 접근하고 있으나, 도시 기반 계획이나 공간 재배치 등 구조적 차원의 반영은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결국 법적 기준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1인 가구의 실제 도시 생활 경험은 제도적으로 소외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1인 가구 도시계획 반영을 위한 핵심 개선 과제
1인 가구를 도시계획의 중심 변수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공간 단위의 재정의, 인프라 공급 방식의 유연화, 데이터 기반 정책 설계가 법·제도적으로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우선, ‘생활권 계획’ 수립 기준을 기존의 인구밀도나 면적 중심이 아닌, 가구 수와 생활 동선 중심으로 재편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도시·군 기본 계획 수립 지침에 ‘가구 유형별 기반 시설 수요 분석 항목’을 명시하고, 1인 가구 밀집 지역에는 소형 커뮤니티 시설, 응급 보건 서비스, 공유 주방 및 세탁소, 디지털 서비스 창구 등 1인 단위 이용에 적합한 인프라가 배치되도록 기준을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주택 정비 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의 기준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현재 정비구역 지정 시, 가구 유형이나 생활패턴을 고려하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어, 소형주택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거나, 1인 가구에게 비효율적인 구조로 재정비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이에 따라 ‘정비사업 조례’ 또는 ‘재생계획 수립 가이드라인’ 내에 1인 가구 반영 조항을 명문화하고, 용적률, 건폐율, 주차장 설치 기준 등에서 유연한 특례를 허용해야 합니다. 공유형 주택이나 소규모 셰어형 커뮤니티 하우징 등의 새로운 주거 모델이 법 제도상 인정되지 않아 확산되지 못하는 점도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국제 도시의 법·제도 변화 사례와 시사점
해외 주요 도시들은 이미 1인 가구 중심 도시구조로의 전환을 법적·제도적 수준에서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UN-Habitat와 McKinsey Urban Institute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 도쿄는 ‘단신세대 대응 도시정책’을 통해 소형 주택 공급, 단독 사용 기반 시설 보완, 소셜 믹스 거주 프로그램 등을 조례화하고 있으며, 독일 베를린은 공공부지 내 마이크로 하우징 우선 공급 정책을 도입하고, 단독 세대를 위한 ‘공공 커뮤니티 라운지’ 의무 설치를 법으로 명문화했습니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1인 가구가 단순한 비주류가 아니라, ‘도시계획의 공식적 변수’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 도시계획 관련 법률 체계 내에 가구 유형 다양성 반영 조항, 소형 인프라 우선 배치 의무화, 혼합용도구역 내 커뮤니티 기능 확보 기준 등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혼자 사는 시민의 심리적 고립 방지와 공동체 연계 서비스를 도시계획 조례 안에 포함하는 등, 물리적 공간 설계와 사회적 연결망 정책을 통합하여 도시공간의 질적 개선을 동시에 달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한국에서도 단순한 물리 공간 중심 도시계획을 넘어서, 삶의 질과 사회관계를 아우르는 계획 수단으로 법 제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제도 개선을 위한 단계별 접근 전략
법·제도 개선은 단기간에 일괄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단계별 접근 전략이 필요합니다.
1단계로는 도시계획 및 공간정책 수립 단계에서 1인 가구 관련 데이터를 반드시 반영하도록 ‘도시계획 수립 표준지침’을 개정하고, 각 지자체의 계획 수립 시 가구 유형 다변화를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절차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도시통계 작성 시 1인 가구의 주거 이동성, 시설 이용 패턴, 주거만족도 등을 반영한 세부 통계를 확보해야 제도 설계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2단계에서는 주택법, 건축법, 도시정비법 등 핵심 법률에 1인 가구를 고려한 기준항목 추가 및 특례 조항을 삽입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컨대 소형주택의 면적 기준 완화, 공동공간 의무 비율 폐지, 공유주택 법적 지위 명확화, 커뮤니티 시설 비율 변경 허용 등은 도시계획의 탄력성과 현실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제도 개선은 중앙정부 차원의 ‘생활밀착형 도시계획 개선 로드맵’과 연계하여 추진되어야 합니다. 국토교통부 또는 대통령 직속 도시계획특별위원회 수준에서 미래 도시의 인구구조 변화 대응을 위한 범부처 통합 제도개선 과제를 수립하고, 국회 차원의 입법 연계 전략도 동시에 추진해야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도시계획은 이제 1인 가구 중심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합니다.
도시는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면, 도시계획 역시 그에 맞춰 유연하게 진화해야 합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구조 변화의 결과입니다. 지금까지의 도시계획이 특정 가구 형태를 ‘표준’으로 설정하고 제도를 설계해 왔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가구 유형이 동등하게 고려되는 도시계획 패러다임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법률의 근거 조항부터, 지침과 시행령, 실무계획 수립 기준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반의 계획 언어와 기준을 바꾸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1인 가구는 도시 공간에서 ‘소외된 다수’로 존재해 왔으며, 이들의 삶을 도시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법적 기초를 마련하는 것은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닌 도시의 미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앞으로의 도시계획은 더 이상 ‘가족 단위 생활’을 중심에 둘 수 없습니다. 이제 도시계획의 중심은 ‘개별 시민의 실제 생활’로 이동해야 하며, 그 첫걸음은 바로 1인 가구를 위한 법·제도 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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