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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도시 속 1인 가구를 위한 커뮤니티 재설계 방안과 해외 사례 비교

도시에서의 삶은 점점 더 고립되고 있습니다. 1인 가구가 대세로 자리 잡은 오늘날의 도시 구조 속에서, 과거와 같은 이웃 중심의 공동체 개념은 빠르게 해체되고 있습니다. 서울연구원과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복수의 보고서에서는 대도시권 내 1인 가구 비율이 이미 전체 가구 유형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 변화는 단순한 인구통계학적 현상이 아니라 도시의 공간, 서비스, 커뮤니티 기능 전반을 재편해야 할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과거 커뮤니티는 가족 단위 또는 다인 가구 중심의 공동체였고, 행정 중심의 시설이나 지역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이러한 가정 단위에 기반하여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도시의 1인 가구는 청년, 중장년, 고령자 등 연령과 목적이 매우 다양하고, 혼자 살되 완전한 고립은 원하지 않는 복합적인 관계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기존의 일방적 커뮤니티 구조로는 더 이상 도시민의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1인 가구의 커뮤니티 요구 특성과 변화된 도시 현실을 분석하고, 국내외 도시들의 커뮤니티 공간 재설계 사례와 정책적 시사점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인 가구와 커뮤니티 재설계

1인 가구의 커뮤니티 수요 특성과 기존 구조의 한계

1인 가구는 단순히 혼자 사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경제적 독립, 주거 선택의 자율성, 생활 패턴의 유연성 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정서적 지지, 사회적 연결, 일상적 안전망에 대한 수요를 지속해서 표출하고 있습니다. 서울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약 60% 이상이 혼자 살지만 '이웃과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응답을 보였으며, 완전한 고립보다는 선택적 커뮤니티 참여를 원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복합적 수요를 반영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과 커뮤니티 시스템이 현재 도시 구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민센터, 복지관, 마을회관 등의 전통적인 커뮤니티 시설은 여전히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되며, 일정 시간에 모여 특정 활동을 하는 ‘강제성 있는 커뮤니티 참여’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1인 가구는 이러한 집합적 방식보다는, 자유로운 시간대 이용, 간접적 소통, 심리적 거리를 보장하는 유연한 공간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현행 도시 계획은 커뮤니티 공간을 기능 중심으로 분류하고 있을 뿐, 사용자 경험 기반의 커뮤니티 설계는 거의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한계는 고령 1인 가구나 청년층에게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고령자는 외로움과 돌봄의 결핍을 동시에 겪으며, 청년층은 이사와 직장 이동이 잦아 지역 커뮤니티에 정착하지 못하는 생활 패턴을 가집니다. 이처럼 도시 내 1인 가구는 각기 다른 배경을 지녔음에도, 공통적으로 '심리적 연결망'의 부족을 체감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커뮤니티 재설계가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공간 재설계를 위한 도시 정책 방향

도시에서의 커뮤니티는 더 이상 전통적 공동체 모델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개별 사용자의 선택권을 중심에 두고, 연결과 독립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공간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 공간의 ‘개방성과 무형식성’을 높이는 정책적 전환입니다. 물리적 시설이 단순히 ‘이용 목적’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자율적 행위에 따라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열린 구조’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서울 일부 자치구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이미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종로구와 성북구에서는 공공시설 일부를 24시간 이용할수 있는 커뮤니티 라운지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소형 도서 공간, 커피 머신, 노트북 좌석, 미니 공연 공간 등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설은 누구나 혼자 와서 머무를 수 있으며, 동시에 자발적인 만남이나 이벤트가 열릴 수 있는 ‘사회적 접촉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디지털 커뮤니티와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연계 설계가 필요합니다. 국토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청년 및 중장년 1인 가구가 지역 정보 접근성 부족으로 커뮤니티 진입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행정기관 주도의 커뮤니티 플랫폼이 아니라 민간 주도 혹은 하이브리드 형태의 디지털 커뮤니티 공간 조성을 제안했습니다. 이를 통해 오프라인 공간과 온라인 소통이 연결되면, 시간과 장소 제약 없이 커뮤니티 참여가 가능해지고, 지속적인 관계 형성이 가능해집니다.

 

셋째로는 커뮤니티 운영 주체의 다변화와 참여 모델의 다양화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민자치회나 지역복지센터 등이 운영을 주도했지만, 앞으로는 청년 스타트업, 지역예술단체, 사회적 기업 등이 커뮤니티 공간의 기획과 운영을 맡아야 합니다. 이는 공공 예산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 수요자에 기반한 맞춤형 커뮤니티 공간을 구현할 수 있는 유연한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해외 도시의 커뮤니티 재설계 사례 비교

해외 도시들 또한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기존 공동체 모델의 한계를 직시하고,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재설계 실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본 도쿄, 스웨덴 스톡홀름, 독일 프라이부르크, 영국 런던 등이 있습니다.

 

일본 도쿄는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는 도시로, ‘마치노에키(まちの駅)’라는 지역 커뮤니티 허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 재설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은 마을버스 정류장, 작은 카페, 건강상담소, 공공정보 게시판, 무료 와이파이존 등이 결합된 형태로, 누구든지 잠시 머무르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저장소이자 출발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스마트쉐어하우징 프로젝트’를 통해, 1인 가구 전용 주거시설 내에 자율 커뮤니티 공간, 공유 식당, 창작공간, 치유 정원 등을 함께 배치하고, 입주자 주도로 공간을 운영하도록 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공간들이 의무 참여가 아닌 선택 기반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이며, 공간 자체가 커뮤니티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관계 형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에코 마을 개념을 활용해, ‘1인 친화형 커뮤니티 주택’과 ‘사회적 연결을 강화하는 공공마당’을 배치했습니다. 이 마당에는 주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빨래 공간, 텃밭, 작은 카페, 공동 워크숍 공간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프라이버시와 개방성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을 끌어내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은 ‘마이크로 커뮤니티 모델’을 도입하여, 각 블록별로 5~10명 단위의 자율 커뮤니티 단위를 형성하고, 해당 커뮤니티가 특정 공간(예: 루프탑 정원, 공유 오피스, 미니 헬스센터)을 관리하도록 하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규모 커뮤니티의 자율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시도로, 1인 가구 중심의 도시 구조에 잘 부합하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1인 가구를 위해 커뮤니티는 다시 설계되어야 합니다.

1인 가구가 도시의 주류가 된 시대, 도시 커뮤니티 역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과거처럼 프로그램 중심, 다인 가구 중심의 집합적 커뮤니티는 더 이상 도시민의 다양성과 개인성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공간을 다시 설계하고, 사람들의 연결 방식을 유연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도시는 사람을 위한 구조여야 하며, 그 사람이 혼자 살아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시의 역할입니다. 이를 위해 커뮤니티는 강요되지 않는 연결, 자율성을 존중하는 공유,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소통 구조로 진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디자인과 정책, 운영 주체의 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도시 커뮤니티는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허용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그 변화의 출발점은 바로 1인 가구를 위한 커뮤니티 재설계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